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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5. 주일오전예배, 요한복음 11:17-44, 예수님 앞에 섭시다!

1. 불완전한 인생은 죽음의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단지 한 가정의 비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육체적으로도 연약하고, 영적으로도 죄 아래 있는 존재입니다. 불완전해서 고난을 당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생이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나사로는 병들었고, 결국 죽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날 만큼 완전한 죽음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죽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하십니다(요11:4). 고난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는 구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영광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배경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 역시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늦으신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분명한 영광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로 친히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베다니로 오셨습니다. 죽음의 냄새가 나는 자리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마르다는 믿음을 고백했지만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는 불완전한 믿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눈물과 절망 속에서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는 불완전한 믿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비통히 여기셨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냉정한 철학자가 아니라

함께 우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의 역사는 ‘돌을 옮기는’ 말씀에 대한 순종과 함께 시작됩니다. 순종이 있어야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3. 예수님 앞에 서면 죽음은 생명으로 바뀝니다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은 자가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영혼이 먼저 반응한 것입니다. 영혼이 살아나자 육신이 움직였습니다. 죽음의 냄새가 생명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영적 죽음이 끝이 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영적으로 반응할 때, 우리의 절망은 소망으로, 눈물은 간증으로, 죽음의 냄새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바뀝니다. 예수님 앞에 서는 순간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닙니다. 부활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능력이 됩니다.

     

4. 예수님 앞에 섭시다!

 고난의 자리는 하나님이 늦으신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크게 일하실 자리입니다. 돌을 옮기는 순종으로 예수님 앞에 서십시오. 죽음의 냄새가 나는 자리라도 예수님 앞에 서면 생명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말씀에 영적으로 반응하여 날마다 예수님 앞에 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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