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1. 주일오전예배, 요한복음 11:1-16, 고난에 맞섭시다!
- khc289

- 2월 1일
- 2분 분량
1. 고난은 피할 자리가 아니라 만날 자리입니다
마르다는 손으로 섬겼고, 마리아는 마음으로 사랑했습니다. 섬김도 중요하고 사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삶의 중심은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인자, 사랑, 은혜를 뜻하는 헤세드(חסד)는 '말씀을 붙들어 울타리를 친다'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붙들 때 우리 삶은 양의 문 안에 보호받는 삶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생명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한 여인(요 8장)에 이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요 9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특별히 더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생들입니다. 우리는 육신도, 영혼도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고 시험이 있습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불완전한 인생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그리고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 함이라'(요9:3)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고난을 정죄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바꾸십니다.
2. 예수님은 양의 문이요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그 문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맹인 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고,
영혼의 맹인 한 사람을 위해서도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고쳐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안위와 자기 방식만을 붙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10:24에서 보듯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언제까지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시겠나이까'라고 묻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배척하게 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영광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향해 돌을 들게 되는 것입니다.
3. 고난은 영광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나사로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즉시 가지 않으셨습니다. 지연은 무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치유에서 끝나지 않고 부활로 나아가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는 구름이 아니라 그 선하심을 더 분명히 드러내는 배경입니다.
4. 고난에 맞섭시다!
성도에게서 고난은 피하는 대상이 아니라 맞서는 자리입니다. 그 방법은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갈2:20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양의 문이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자기 삶의 고난 한가운데로 말씀을 붙들고 담대히 나아갑시다. 고난에 맞서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취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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