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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6. 주일오전예배, 요한복음 1:35-42, 보고 신앙에서 안보고 신앙으로(1)

  • 작성자 사진: khc289
    khc289
  • 2024년 10월 6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10월 15일

1. 보고 신앙(체험 신앙)에서 안보고 신앙(무조건 신앙)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 세례 요한이 다시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을 따르던 두 제자 즉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요13:23 외)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에 예수님이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묻고, 그들은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Where are you staying)'라고 묻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을 때 전형적인 질문과 답변입니다. 특히 '어디 계십니까?'라고 묻는 것은 실존적인 질문으로 '랍비 즉 선생이라고 불릴 만한 이름값을 하십니까?' 내지는 '이름에 걸 맞는 무엇인가를 줄 수 있습니까?'라는 의미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예수님이 뭐라고 답하시죠? '와서 보라'라고 하십니다. 와서 보고 자신이 누구고 무엇을 하는지 즉 무엇을 줄 수 있는 지를 몸소 경험(체험)하라고 하십니다. 이에 그들이 예수님 계신 데를 보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 즉 오후 4시쯤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1)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고 2) 성령을 베푸시는 분이고 3)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요1:29-34). 이를 유대인들이 공유하는 성경적 단어로 표현하면 메시아 즉 그리스도입니다. 이 사건을 혹자는 고상한 회심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를 ‘보고 신앙’ 즉 체험신앙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믿기 어렵지만 눈으로 본 사실이고 정말 기쁜 일이면 어떻게 하죠? '이 기쁜 소식(복음)'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알리지 않겠습니까? 안드레는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출현하셨는데 그 분이 여기 계시다'라고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전합니다.

     

2. 안보고 신앙(무조건 신앙)으로 복을 받읍시다!

 분명 보고 믿는 일은 이처럼 역사적인 일들이 많이 있게 됩니다. 만나 보고, 만져 보고, 경험해 보고, 맛을 보고, 취해 보고, 눈으로 보고, 맡아 보고, 들어 보고, 체험해 보는 일이 우리의 신앙을 성장하게 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지 못해도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데 기도한 대로,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안보고 믿는 믿음이 성숙된 믿음입니다. ‘안보고 신앙(무조건 신앙)’ 정도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파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처럼, 세례 요한처럼, 안드레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상처 받기도 하고 혹은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자신의 뜻과 달라도, 예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위치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굳이 만나 보고, 만져 보고, 경험해 보고, 맛을 보고, 취해 보고, 눈으로 보고, 맡아 보고, 들어 보고, 체험해 보지 않아도 되는 그 이름이 뛰어나신 분입니다. 단지 우리는 그러하신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나면 됩니다. 남은 자인 언약백성으로서 성도된 우리는 안보고 믿는, 무조건 믿음 가운데 말씀으로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그래서 보지 않고도 믿는 무조건 신앙이 복됩니다(요20:29). 우리는 그러한 신앙을 가짐으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마11: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고 신앙(체험 신앙)에서만 멈추지 마시기를, 안보고 신앙으로 성숙된 믿음으로 갖게 되시기를, 그래서 날마다 풍성한 복락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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