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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7. 주일오전예배, 요나 4:5-11, 사랑에 생명을 담아냅시다!

  • 작성자 사진: khc289
    khc289
  • 2024년 3월 17일
  • 2분 분량

1. 생명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나는 니느웨의 동쪽에 앉아 있습니다. 자기가 앉은 그곳에 죽음을 부르는 뜨거운 태양과 바람을 피하려고 자신을 위하여 초막을 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니느웨가 멸망당하는지 안 당하는지 자기 눈으로 보겠다고 그곳에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며 앉았던 겁니다. 무엇이 이토록 요나를 집착하게 하고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분명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니느웨를 그냥 두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것과 요나가 집착하는 것은 분명 동에서 서가 먼 것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 한 생명 소중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라고 하는 사실에 입각해 하나의 생명도 하찮게 여기시거나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공의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랑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한 생명 한 생명을 주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집착남 요나를 깨닫게 하시려고 세 가지를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박넝쿨과 벌레와 동풍입니다.

 오늘 본문 6-11절에서 보듯 하나님은 불완전하게 자리 잡은 초막에 박넝쿨을 자라게 하시고 벌레로 죽이신 후 뜨거운 바람으로 요나를 혼미하게 하십니다. 이에 요나는 다시금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라고 물으십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음'을 고백했던 요나라면 박넝쿨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에게 자신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아직은 그러한 요나이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였지만 그 사명에 사랑을 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그 사랑을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사랑에 생명을 담아내기를 요구하십니다.

 저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고 가축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들도 사랑이 필요한 생명이고 그 가축들도 사랑이 필요한 생명입니다. 요컨대 요나가 사명에 그토록 집착했지만 그가 놓치고 있던 것은 사랑과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2. 사랑에 생명을 담아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에는 생명이 담겨져야 합니다. 요나 4장을 보면 요나는 사명에 집중했지만 하나님은 사랑에 집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집중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대상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명에는 열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풍성한 생명과 진지한 사랑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에 사랑을 담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생명에 주목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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