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1. 주일오전예배, 요나 1:7-17, 왜?에서 무엇을?으로
- khc289
- 2024년 1월 21일
- 2분 분량
1. 요나가 사명감을 고취합니다.
1) 영적 잠에서 깨어난 요나
배에 있던 사람들이 제비를 뽑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에게 제비뽑기는 속된 표현으로 운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에 있던 한 사람 요나만큼은 세상만사 모든 일이 운명이나 운빨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비가 자신 앞에 떨어지는 그 순간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다는 것, 하나님이 자신을 바라보게 하신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 그것도 생명을 바쳐야 하는 제비에 뽑힌 요나이지만 요나를 더 두렵게 하고 더 전율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이 유익하고 영원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 자체가 절망이고 파멸입니다. 아니 삶과 죽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은 죽음 이상의 경외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을 바라보다!
그렇게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요나는 걸림돌(롬9:32)이 없어집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이 '이러한 일들이 누구 때문이냐?'(욘1:8)라고 묻자 요나가 대답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그들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왜?에 관심이 있었지만 요나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3) 왜?에서 무엇을?으로
그래서 요나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였기’때문이라고 말합니다(욘1:10).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니 문제가 발생하고 시련과 고난이 닥치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겁니다. 그러자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고 어떠한 일을 하시는지를 알게 된 그들이 하나님이 참 신이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요나는 죽기를 주저하지 아니하고 결사각오로 하나님의 뜻을 자신과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2. 왜?에서 무엇을?으로 사명을 감당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합니다’그렇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선지자적 사명자입니다.
그러므로 요나가 영적 각성으로 깨어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왜?에서 무엇을?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처럼 우리 또한 2024년, 영적 각성으로 깨어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왜?에서 무엇을?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2024년,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의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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