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1. 주일오전예배, 학개 2:10-19, 성전 됨을 기억합시다!
- khc289
- 2022년 7월 31일
- 2분 분량
1. 성전 됨 전후의 삶
유대 땅은 9월에는 이른 비(יורה;요레, 모레)가 내려야 다음 해에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른 비는 3-4월에 내리는 늦은 비(מלקוש;말코쉬)와 함께 일년 농사의 중요한 물 공급원이 됩니다(신11:14, 욜2:23, 약5:7 등 참조). 이전에 보았듯이 이미 주전 520년까지는 성전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으로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학1:9)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학1:10)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가 들었었습니다(학1:11).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한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이른 비가 내릴 것인가?' 그래서 '삶의 형편이 나아질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순종에 따른 복과 상급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며 불의하지 않습니다. 단지 주님이 주시는 복과 상급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완벽하고 완전하고 시의적절하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때가 많을 뿐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학개로 하여금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11).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대인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질문 1은 이렇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제물에 무언인가가 닿으면 그 닿은 것이 거룩하게 되겠느냐?라는 질문입니다. 그 답은 '아니오'입니다. 율법적 해석에 의하면 거룩(정)한 것은 다른 것을 거룩하게 하지 않습니다. 율법적 거룩은 그 자체로만 거룩을 담보합니다.
다음 질문2는 이렇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부정한 것에 무엇인가가 닿으면 그 닿은 것이 부정하게 되겠느냐?'라는 질문입니다. 그 답은 '예'입니다. 율법적 해석에 의하면 부정한 것은 다른 것을 반드시 부정하게 합니다. 율법적 부정은 다른 것도 부정하게 합니다.
이와 같은 율법적 해석을 도출하게 하신 하나님은 '이 백성, 이 나라, 그들의 손의 모든 일, 그들이 드리는 것이 다 부정하다'(1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거룩하지 않기에 다른 것들을 거룩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부정하니 다른 것들도 부정하게 합니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성전이 재건되지 않은 때의 일입니다. 성전 됨이 없을 때 인간계는 거룩하지 않고 부정하니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이고 자연계도 동일한 선상에서 그 표징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전 됨의 소망'(학2:6-9)을 갖는 사람들은 성전이 재건되지 않은 때에 거룩하지 못하고 부정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15). 성전 되지 못한 삶이 어떠한 지에 대해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18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라고 하신 후에 다시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라고 재차 말씀하셨겠습니까? 성전 됨이 없으면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성전 됨이 없으면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19a). 그러한 사람들에게 성전 된 '이 날로부터는 복을 주리라'(19b)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따라서 성전 됨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령이 거하심으로 성전이 되는 것 즉 성령과 함께 하는 것(학1:13, 고전3:16)과 더불어 성전 됨을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는 이미 성령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전 됨을 기억함으로 복을 누리게 됩니다.
2. 성전 됨을 기억하고 복을 누립시다!
이제 성전 됨을 기억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스스로는 거룩하지 않고 부정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거하심으로 성전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성전 됨을 기억하여 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날마다 성령과 함께 성전을 세우고 성전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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