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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3. 주일예배, 하박국 3:17-19, 불평에서 기쁨으로

  • 작성자 사진: khc289
    khc289
  • 2022년 7월 3일
  • 2분 분량

도대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보릿고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 포도, 올리브는 유대인들의 주요 생산품이자 소비품입니다. 많아야 번영한 것이고 없으면 망한 것입니다. 하나도 없으니 경제활동, 경제교류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밭에는 먹을 것을 심어서 수확해 배를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밭에 아무 것도 없어 배를 채울만한 음식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가축들이 먹을 것이 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효용은, 양과 소와 같은 가축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와 양이 없으니 제사에 드릴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예배를 드리기 위한 봉헌물이 없게 된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낙심하고 실망하다 못해 불평하고 또 불평하게 됩니다. 누구나 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바로 그러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하박국이 이제 태도를 180도 바꿉니다. 오늘 본문 18-19절입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그 사이에 더 어려워지면 어려워졌지 상황과 환경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박국의 태도를 이처럼 바꾼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메시안 언약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메시아 언약의 방점을 찍은 하나님의 말씀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2:2) 하신 말씀 곧,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그에게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고 감격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진 것으로 구원의 기준을 삼겠다고 하시거나 행한 것으로 구원의 기준을 삼겠다고 하시거나 윤리와 상품으로 구원의 기준을 삼겠다고 하신다면 낙담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평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며 그의 역사를 쓰고 계십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우리의 태도가 바뀝니다. 그러하신 하나님과 기뻐하심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데전5:18b)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힘들고 고달픈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에게 의탁하여 보지만 여전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불평과 불만이 생깁니다. 힘들다고 고달프다고 하소연합니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노력도 합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니 있습니다. 믿음이 점점 없어지고 불만과 불평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이 한 짝이라면 불평과 불순종이 한 짝입니다. 믿음에 감사를 더하면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개인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보릿고개의 고난을 감사의 절기로 세우게 하셨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가운데에서도 고난이 감사가 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우리의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며 역사를 쓰고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현실에 불평하지 말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저 높을 곳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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