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4. 주일예배, 마태복음 4:12-25, 제자로 부르시다!
- khc289
- 2021년 7월 9일
- 2분 분량
오늘 본문으로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신 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제자로 삼지 않았던,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이제서야 '사람을 낚는 어부' 곧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인 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제자는 천국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17절의 말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는니라'라고 하신 것에서 보듯, 그들을 부르신 이유는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 곧 회개하라 하고, 임박한 종말과 그에 따른 바른 믿음을 전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상최대의 명령입니다.
따라서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은 죽음을 무릎쓰고, 죽기까지 감당할 사명이기에, 전적으로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같이 할 제자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을 부르신 것도, 지금 우리를 부르신 것도 이러한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에게로,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향하는 회개와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일에, 죽기까지 헌신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이유를 보기 전에, 본문의 배경을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를 통해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창기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그 권위와 능력으로 인해,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지만(눅4:36), 베드로가 깊은 물에 그물을 내린 것은 믿음에 따른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불신과 회의에 기인한 극도의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 번 해 보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경험과 지식을 초월하는 일이 자신의 눈 앞에서 목도되어지기 전, 온갖 수고를 다하는 것으로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체험하기 전, 시몬 베드로는 주님(창조주)을 주님(주인)이라고 부를 수 없었고, 그래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되고,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내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결과는, 잡은 고기가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고, 자신의 동료들 곧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불러 도와달라고까지 합니다. 이제 확신으로 영이 눈을 뜨게 되고, 예수님이 만물의 창조주와 주관자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납작 엎드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이렇게 되니 자신의 불신과 완고함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가 눅5:8에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반응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확신에 기인합니다. 그는 육신의 보존을 위해 심지어 닭이 두 번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기도 하겠지만, 더 이상 예수님이 '아도나이', '주'이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제자들을 부르신 것도, 지금 우리를 부르시는 것도, 우리에게 말씀의 확신을 갖게 하시기 위해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모든 말씀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이유입니다. 공관복음를 입체적으로 보건데,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을 태운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놔두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부르심을 입고 예수님을 따릅니다(20, 눅5:10-11). 마찬가지로 배를 육지에 대고, 아버지인 세배대와 그물을 깁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심을 받으니, 그들도 아버지와 배를 놔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21-22, 눅5:10-11). 부르심을 입은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온전히 순종합니다. 말씀이 믿어지니,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던 겁니다.
순종 곧 '버리고 따른다(ακολουθεω)'는 것은 자신의 삶과 가족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뜻을 같이 하며,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기계적이고 맹목적이지 않으며,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결단과 결심 그리고 그로 비롯된 행위를 포함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주님의 사역에 동참시키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에 이러한 순종으로, 가르침과 치유에 동역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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