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주일예배, 주님의 계획
- khc289
- 2021년 7월 9일
- 3분 분량
헤롯의 계획은 자신의 권력을 담보하기 위한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마2:4에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라고 묻는 것처럼 '유대인의 왕'은 메시아,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것에 미쳐 그리스도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자못 그의 계획은 치밀했습니다. 먼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모아, 그리스도가 나실 곳을 묻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성경 말씀을 참 잘 알고 있어 정답을 제시합니다(마2:5). 이제 헤롯은 동방 박사들을 불러놓고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기'(마2:7)까지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기의 나이를 추산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다음 그들을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정답으로 제시했던,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마2:8a).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덥석 물을 덫이 된 겁니다. 그 다음 헤롯은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라'(마2:8b)고 합니다. 아기의 신상을 털어 확실한 정보를 얻겠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2:8c)고 동방 박사들에게 과제를 주고, 미끼를 던집니다. 헤롯의 완벽한 계획은, 손 안되고 코 풀 일만 남았습니다. 그의 계획은 치밀하고 철저했습니다. 한 마리 짐승을 잡듯이, 아기 예수를 사지로 몰아넣고 죽일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그에 따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자칫 덫이 될 수 있었던 동방 박사들에게,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마2:12) 지시하십니다. 동방 박사들은, 주님의 계획이 아니었다면 불의의 도구로 사용될 뻔하였습니다. 지난 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방 박사들도 메시아를 대망하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악의 덫에 걸려 큰 죄악을 저지를 뻔 하였던 겁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십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15:33). 선과 악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악은 선을 오염시키기 위해 온갖 협잡을 일삼습니다. 그러나 선한 마음과 양심을 가지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시7, 딤전1:5 등). 주님은 선한 마음과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계획하십니다. 착한 마음과 양심이 있다면 주님이 지켜주십니다.
동방 박사들에 이어 요셉의 가족도 위기일발의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주님은 계획이 있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꿈에서 나타나시어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13)고 하십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계획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다면, 피에 굶주린 늑대에 쫓기는, 원거리 여행은 산모나 아기 모두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오게 하셔서 ,적어도 출산 후 41일이 지나서야 만나게 하셨고, 이 후 헤롯이 악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신 겁니다. 동방 박사들이 떠난 후고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7km 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니, 긴급한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동방 박사들이 떠난 후 수 일 내 요셉의 가족도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주님은 모든 일에 오차와 실수 없이, 때와 시에 맞게 계획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속계획의 최고 정점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 위해 사셔야 했습니다. 주님은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라고 멸시받던 나사렛으로 가라 지시하셨고(22b), 그 명령에 따라 요셉 가족은 나사렛으로 이주하게 되며, 예수님은 후에 나사렛 사람으로 칭함을 받습니다(23). 신약의 구약인용은 단어, 구절, 문맥, 정신의 인용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외친 십자가 정신을 인용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하찮고 멸시받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조롱받으시고 나무에 달리시게 될 거라는 구약 말씀들(신21:23, 사53, 단9:26, 갈3:13)의 성취입니다. 주님은 명문세도로서의 탄탄대로의 삶이 아니라, 인류의 속죄를 위해 고난받고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획하셨던 겁니다. 십자가에 지고한 사랑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모든 이들이 십자가의 삶을 살도록 계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쓰임받느냐가 중요합니다. 탐욕이 수단이 되고, 부귀영화가 목적이 되면 사탄에게 쓰임받고, 사탄이 계획한 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과 같이 선한 마음과 양심으로, 주님을 만날 목적을 세우면 주님에게, 실패함이 없이, 시의적절하게 쓰임받으며, 주님의 구원계획에도 쓰임받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생명이 있는 십자가 삶에 쓰임받게 됩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탄마귀의 죽이는 일에 쓰임받지 마시고, 주님의 살리는 계획에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생명으로 쓰임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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