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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주일예배, 사랑과 은혜의 스펙트럼

  • 작성자 사진: khc289
    khc289
  • 2021년 7월 9일
  • 2분 분량

유대인으로서 마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태복음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교적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문화와 배경을 포함하고,다른 신약의 책들보다 구약인용을 많이 했지만 또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도 훌륭하고 완벽한 가르침입니다.

2절로부터 16절까지는 예수님의 계보에 관한 기술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 왕가에 이르는 예수님의 계보는 예수님의 왕권에 대한 법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구약의 말씀들에 익숙한 유대인들은 이 계보만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이 다윗 왕에게 맹세한 언약의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삼하7:12-13, 대상17:10-14). 그래서 그리스도의 계보는 유독 '왕가의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이 계보에는 유명한 인물, 생소한 인물, 이방인, 여인, 수치스런 일들을 한 사람 등등 각양의 신분과 지위와 연약함이 그대로 받아들여져 있습니다. 2절로부터 16절이 말 그대로 계보로써 '혈통' 내지는 '혈육'만을 강조한 것이라면 생략하거나 다른 식으로 기술할 수는 없었을까요? 왜 이렇게까지 기술하고 있는 걸까요?

마태복음은 '다윗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절정은 십자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라는 독자의 질문에 또한 답변해야 했습니다. 특히 16장 16절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대답의 중심에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아니 온 인류가 그토록 대망하던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온전히 받으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누구의 아들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못나고 추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겁니다. 2절로부터 16절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후손으로서 수동적 관계성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나고 추한 우리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주님이 이렇게까지 하실까요? 죄인은 죄인대로 심판하고, 의인은 의인대로 구원하시면 될 일 아닐까요? 이렇게 하시면 모든 이들이 형벌의 심판대에 설 수 밖에 없고 결국 모두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롬5:12). 그래서 대속제물로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겁니다. 단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양자로 삼으시려고 사랑하는 친아들을 처참히 죽게 하신 겁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아빠', '아버지'(롬8:15)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고하신 사랑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나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나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은혜'로써 확증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사랑은 ‘언약을 지킴'이라는 뜻을 내포하며, 은혜는 불쌍히 여김이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십자가에서의 사랑과 은혜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사랑의 언약들을 기억하셔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없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사랑과 은혜는 주님이 우리에게 비추시는 스펙트럼의 두 빛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전인격적으로 인정하시고 지금 이 시간 주님께 은혜를 구하시는 자리로 나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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